Zero Gravity Silence
영화 Gravity에서 주인공 산드라 블록은 우주에 나와서 가장 좋은 것으로 silence(고요)를 꼽았다. 그리고 나 역시 무중력 상태의 우주선에서 진공의 고요함을 보여주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그 후로 소리가 없는 세상에 대한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오롯이 나라는 존재만이 남아있는 진공의 세상.

다이아몬드 해변을 들러 나오는 길에도 안개는 여전히 짙었다. 구름은 낮아서 차 천장을 스칠것 같았다. 링로드를 따라 얼마 달리지 않았을 때 노란 잔디가 펼쳐진 언덕을 발견했다. 멀리 옹기종기 모여있는 무언가가 양 떼인 것 같아 차를 세웠다.

양들을 향해 걸어가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안개 때문인지 구름 때문인지 주변이 너무나 조용했다. 마치 모든 소리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느낌이었다. 하다못해 내 숨소리까지도 어디론가 흡수되어버리는 듯 했다. 마침 작은 개울물이 흐르는데 몇발짝 앞까지 다가서고 나서야 비로소 쪼르륵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안개의 마법에 빠진 걸까? 바로 앞에 있는 메이에게 말을 걸어도 왠지 듣지 못할 것 같았다. 뭐였더라, 이 고요함? 맞다, 그래비티에 나오는 그 고요함!

푹신한 잔디 위가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걷는 기분이었다. 아이슬란드라는 우주에 오롯이 혼자인 나. 저 앞에 메이가 있다. 나만의 우주에 찾아온 또 다른 우주. 찰칵찰칵 셔터 소리를 내어보았다. 나를 보고 웃어주는 메이. 한참을 무중력 위에서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우리의 교신은 사진 약 15장가량. 랑데뷰를 마치고 양들에게 다가가려고 했으나 눈치 빠른 녀석들은 이미 저쪽으로 우르르 도망가버린 후였다. 우리 사이엔 인력이 아닌 척력이 존재하는 듯. 간간히 메에에 하고 우는 녀석이 있어서 침묵의 마법은 깨지고 말았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생각이 난다. 무중력의 마법이 존재하던 남동부 아이슬란드의 언덕. 낮은 구름과 뺨을 스치던 안개와 습도, 포근하지만 마치 진공과도 같았던 그날의 공기. 그리고 그 고요함.